철학과 과학의 경계

순서의 인과가 시간의 흐름을 만든다? - 시간의 화살표와 엔트로피 이야기

interflowlab 2025. 3. 28. 11:31

“시간은 왜 한 방향으로만 흐를까?”
우리는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있어도, 삶의 시간은 거슬러 오를 수 없습니다. 깨진 유리는 다시 붙지 않고, 식은 국은 저절로 데워지지 않으며, 우리는 늘 ‘과거 → 현재 → 미래’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흐름은 왜, 어떻게 생겨난 걸까요?

시간의 방향성, ‘시간의 화살(arrow of time)’

우주를 가로지르는 빛의 화살이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이미지



물리학에서는 시간의 방향성을 ‘시간의 화살’이라고 부릅니다. 뉴턴의 고전역학이나 슈뢰딩거의 양자역학 방정식은 사실 시간의 흐름을 앞뒤로 바꾸어도 성립합니다. 즉, 이론적으로는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든, 미래에서 과거로 흐르든 물리 법칙은 상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오직 한 방향, 즉 미래를 향한 흐름만을 경험할까요?

해답은 ‘엔트로피’에 있다

점점 식어가는 커피 한 잔이 엔트로피 증가를 상징하는 장면



이 질문에 답을 주는 개념이 바로 **엔트로피(entropy)**입니다. 엔트로피는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언제나 증가하려는 성질을 가집니다. 정돈된 상태(질서)가 점점 무질서해지는 경향, 이것이 엔트로피입니다.

예를 들어, 뜨거운 커피를 식탁 위에 올려두면 서서히 식습니다. 주위 공기와 열이 섞이며 에너지가 고르게 분포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은 자발적으로 일어나지만, 반대로 차가운 커피가 자연스럽게 뜨거워지는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후자의 경우는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방향이기 때문이죠.

즉,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세계가 변한다는 것과 동의어입니다.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이유는, 기억과 인지 모두 이 변화—엔트로피 증가—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인과관계와 시간

공중에서 깨진 유리컵이 인과관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


한 걸음 더 들어가 봅시다. 우리가 “A가 B를 일으켰다”는 인과관계를 느끼는 것도, 사실은 시간의 방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인과는 항상 과거에서 미래로 향합니다. 예를 들어, 컵을 떨어뜨렸더니 깨졌다는 것은 컵을 떨어뜨린 ‘원인’이 ‘결과’인 파편을 만든 것이죠.

이러한 인과의 순서 자체가 시간의 방향성을 지시합니다. 다시 말해, 인과의 순서가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일 수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즉 엔트로피 증가의 방향이 인과를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열역학적 시간’

가을 나뭇잎이 떨어지며 열역학적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장면



정리하면,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은 물리학적으로 말해 ‘열역학적 시간(thermodynamic time)’입니다. 이 시간의 화살은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쪽을 향합니다.
심지어, 우주의 탄생 이후 지금까지 모든 별, 행성, 생명, 기억, 진화의 과정도 이 방향성을 따르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의 상대성을 밝혀냈지만, 여전히 왜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가라는 질문에는 완전한 해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경험하는 시간은 언제나 무질서가 증가하는 쪽이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마무리하며

창밖을 바라보는 노인의 얼굴에 흐르는 시간과 기억이 담긴 이미지



시간은 마치 우리 삶의 강물처럼 흐릅니다. 하지만 그 흐름은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우주의 본질적인 변화—엔트로피의 증가—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인과관계, 기억, 감정, 변화, 성장, 죽음까지도 모두 이 시간의 화살 위에 존재하는 것이죠.

이제 시계를 볼 때, 단순한 초침 너머에 숨어 있는 우주의 깊은 법칙까지도 함께 떠올려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