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치, 흙의 노래: 집단 기억과 심리적 부활에 대한 노래 - 《혼의 불》을 통해 바라본 민중의 기억과 뇌과학적 의미
“우금치는 아직도 누군가의 가슴에서 운다.”
— 혼의 불 : 우금치, 흙의 노래 中

130년 전, 충청남도 공주의 작은 고개에서 벌어진 전투가 있다.
1894년 11월, 우금치 전투.
이곳에서 전봉준 장군이 이끄는 동학 농민군 수만 명이 조선 정부군과 일본군 연합군에 맞서 싸웠고, 비극적 결과로 수천 명이 흙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교과서에서조차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오늘날 우리가 이 이야기를 다시 불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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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치 전투란 무엇인가?

우금치는 ‘고개’(峙)를 뜻하는 한자어로, 공주와 논산 사이를 잇는 험한 지형이다.
이곳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마지막 격전지로, 전봉준과 농민군은 탐관오리와 외세에 맞서 싸우다 수천 명의 희생을 남기고 무너진다.
이 전투를 끝으로 동학군은 사실상 해체되었고, 이후 조선은 본격적인 일본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2025년에 이 ‘패배한 싸움’을 다시 이야기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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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다만 ‘기억’될 뿐이다
우금치는 단지 하나의 전투 장소가 아니다.
민중의 기억이 매장된 장소,
‘지워진 자들’의 고통이 묻힌 지층,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가 여전히 싸우고 있는 구조적 억압의 원형이다.
뇌과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장소는 단지 ‘과거의 공간’이 아니라,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 속에 잠재된 트라우마의 저장소로 기능한다.
정신분석학자 융(C.G. Jung)은 한 사회가 ‘억압된 기억’을 제대로 직면하지 않으면,
그 억압은 반복적으로 다른 형태로 되살아난다고 말했다.
우금치는 그 대표적인 예시다.
잊혔다고 생각했던 농민의 분노는,
2024년 겨울 남태령 고개를 넘던 트랙터 시위로 다시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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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가 넘은 고개, 기억이 넘은 고개

2024년 12월과 2025년 3월, 수백 대의 트랙터와 수천 명의 농민이
서울을 향해 남태령 고개를 넘었다.
누군가는 단순한 농민 집회로 바라봤지만,
그 장면은 우금치에서 꺾였던 민중의 발걸음이 130년 만에 부활한 장면이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기억의 복원이며, 상징적 치유(symbolic healing)의 출발점이다.
개인이 겪는 트라우마 회복과 마찬가지로, 사회 또한 자신의 ‘억압된 기억’을 말로, 노래로, 이미지로 표현할 때 치유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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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노래는 누구의 기억인가
혼의 불 : 《우금치, 흙의 노래》는
AI 음악 프로젝트 MKHZ에서 제작한 정치·역사 풍자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다.
하지만 이 곡은 단순한 정치적 메시지를 넘어서,
‘흙’이라는 심상이 상징하는 것들—
농민, 생명, 피, 죽음, 순환, 부활—을 음악과 영상으로 되살린다.
특히 인트로에 인용된 민요 구절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는 전봉준을 기리는 진혼의 언어이자,
뇌 속 해마가 불러오는 감정기억처럼 우리 안에 각인된 울림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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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뇌’만이 아니라 ‘몸과 사회’에 저장된다

현대 뇌과학은 트라우마가 단지 기억의 문제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트라우마는 감각, 몸, 공간, 상징 속에 저장된다.
한 사회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우금치 고개,
남태령 언덕,
트랙터 바퀴에 밟힌 흙,
그리고 노래로 불리는 ‘묻힌 이름들’.
이 모두는 한국 사회가 억압했던 과거와 화해하는 뇌신경적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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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우리는 왜 ‘노래’로 기억해야 하는가

우리는 역사를 사실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는 느낌, 장소, 음악, 이미지로 기억한다.
그래서 “노래”는 뇌의 편도체(amygdala)와 해마(hippocampus)를 동시에 자극하며,
단순한 정보가 아닌 정체성과 감정의 기억을 만든다.
《우금치, 흙의 노래》는 그런 의미에서
*‘망각에 저항하는 감각의 기념비’*다.
📌 우금치에 묻힌 평범한 백성들의 아픔을 담은 이 노래,
아래 링크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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