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 나라 잃은 지식인의 심리 — 조선상고사와 인간적 고뇌
"솜옷 한 벌, 차마 부탁하며…"
그가 남긴 이 한 줄의 편지에는
단재 신채호라는 인물이 겪은 절망과 인간적 고뇌,
그리고 끝내 꺾이지 않았던 정신의 뿌리가 담겨 있다.
그는 역사가이자 사상가였고, 동시에
가족에게조차 손을 벌리기 주저하던 한 인간이었다.
사상가, 아나키스트, 그리고 행동하는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와 『조선사연구초』 등으로
식민사관을 정면으로 반박한 민족주의 사학의 창시자였다.
하지만 그는 단지 글을 쓰는 역사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독립운동가로서
무장 투쟁을 정당화하는 ‘조선혁명선언’을 집필했고,
의열단의 정신적 지주로
폭력 혁명조차 불사해야 한다고 선언한 아나키스트이기도 했다.
“민중은 피를 먹고 사는 짐승이 아니다.
민중이 노예 상태에 있는 것은 우매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는 철저히 민중의 편에서,
이성적 사유가 아니라 행동하는 실천을 선택했다.
인간 신채호의 그림자, 차디찬 감옥의 마지막 편지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모든 위대한 이름 뒤에 감춰진
고통받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1936년, 중국 뤄양 감옥.
영양실조와 저체온, 극심한 외로움 속에서
신채호 선생은 아내 박자혜 여사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솜옷 한 벌만이라도 보내줄 수 있겠소.”
“이 옷으론, 올 겨울을 버틸 수 없소이다.”
나라를 잃은 지식인이 겪는 이 처절한 무력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는
자신의 사상을 완성하는 대신,
자신의 몸 하나조차 지킬 수 없는 인간으로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가 조선혁명선언을 집필하던 붓을 쥐던 손은,
이제 겨우 떨리는 펜으로 가족에게 따뜻한 옷을 부탁하는 손이 되어 있었다.
조선의 역사와, 그의 기억을 노래로
나는 그 편지를 처음 접한 날을 잊을 수 없다.
단재는 ‘사상가’ 이전에 너무나도 깊은 감정의 사람이었고,
가족을 향해, 조국을 향해 끝없이 미안해하던 사람이었다.
이후 나는
그의 고통과 사상을 음악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품었고,
AI의 도움을 받아 헌정곡 [혼의 불] ‘단재가’를 만들게 되었다.
이 노래에는
그가 감옥 바닥에 남긴 기척,
그가 하지 못했던 울음,
그가 쓰지 못한 마지막 논문이 담겨 있다.
단재를 기억하는 방식
그의 사상은 위대했고,
그의 고통은 지독했다.
우리가 신채호를 기억하는 방식은
단순히 ‘조선상고사’의 문장이나 ‘아와 비아’의 사유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낸 그 절망을 함께 끌어안는 것이어야 한다.
그의 이름은 단재(丹齋).
붉은 붓끝이라는 뜻이다.
그 붉음은 피가 아니라,
꺾이지 않던 그의 마음이었다.
마무리하며
역사를 지킨다는 것은
과거를 박제처럼 보관하는 일이 아니다.
고통을 함께 감각하고, 다시 살아내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도 단재처럼
무력하고 외로운 순간에 맞서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고통을 기억하는 일은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고통을 담은 이 노래,
아래 링크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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